2008년 11월 26일 수요일

200713033 심영보 오세암


200713033 심영보


오세암


보는 내내 참 낯부끄러웠던 필름이다. 보통 보는 사람을 민망하게 만드는 유치한 상황 연출은 로맨틱한 장면일 경우가 많은데, 로맨스는 전혀 느껴지지 않으면서도 이렇게 부끄러울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참고로 민망한 상황 연출의 대가는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생각이 든다. 미야자키의 필름 속 로맨스는 어찌 그리 부끄럽던지... 센과 치히로의 ‘니기하야미 코하쿠누시’ 씬이나 아시타카의 ‘당신은 아름다워’ 씬은 충격과 낯 뜨거움의 결정체였다.)
오세암을 남부끄럽게 만든 결정적인 요인은 대사이다. 대사 자체는 아름답다. 그러나 지나치게 소설적이다. 소설적인 대사는 소설 속에서는 어색하지 않지만, 영상에서는 다른 문제다.
소설과 영상의 가장 큰 차이는 시간성이다. 소설은 작가의 의도에 따라 단 하루의 시간을 수십 권으로 표현할 수도 있고, 수십 년의 시간을 한 권에 압축할 수도 있다. 주인공의 기나긴 독백을 읽으면서도 독자는 그 독백이 고작 5초 안에 떠올린 감상이라는 사실을 굳이 걸림돌로 생각하지 않는다. 소설이 이렇듯 시간을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독자가 소설을 통해서 보는 것은 어느 누군가의 ‘기억의 기록’ 이다. 마치 일기장처럼. 소설은 독자의 시간을 장악하지 않기 때문에, 독자는 소설을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일’ 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어느 특정한 때에 일어났던, 혹은 일어날 수 있는 누군가의 기억’ 으로 여기게 된다. 기억은 개인의 감정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1초의 순간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영원처럼 기억될 수 있는 것이다. 독자는 무의식중에 그런 ‘가능성’ 을 배제하지 않게 되고, 이것이 소설이 엿가락 늘이듯 시간을 주무를 수 있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영상은 다르다. 관객이 영상을 보는 동안에도 시간은 꾸준히 흘러간다. 관객은 주인공이 체험하는 시간과 자신이 영화를 보며 흐르는 시간을 동시간대의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특별히 시간과 관련된 연출이 삽입되지 않는다면, 시간적으로 아귀가 맞지 않는 상황이 전개되었을 때 관객의 감정 이입은 끊어져 버리게 된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끼고 있다면, 실제로 관객이 그 부분의 필름을 보는 시간 또한 짧아야 관객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보통 데이트 장면을 표현할 때, 1분 안에 노을 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아쉬움을 표현하지 하루 종일 노는 모습을 길게 보여주고는 “어머나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네~” 라는 대사로 때우지는 않는다.
오세암의 문제는 여기에 있다. 감이의 서정적인 대사는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인 상황 속에서 어울리는 대사이다. 그러나 감이는 그 상황 속에서 영원의 시간을 보내는 듯한 감성을 느꼈을지는 몰라도, 관객에게는 고작 몇 초 만에 훌쩍 넘어가버리는 시간인 것이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몇 초간 단풍잎좀 만져보았다고 시 한수가 절로 나오는 감이의 캐릭터성을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 그 이전에 감이가 감정을 이입해야 할 대상이 맞는지도 애매모호하다. 대체 누구의 시간에 관객의 시간을 맞춰야 하는가? 주인공은 누구인가?
오세암의 틈틈이 긴장을 풀어주는 개그요소라던지, 부처님의 입만을 보여주는 연출 등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관객에게 감동을 주고 싶었다면, 관객이 동조할 수 있는 명확한 주인공을 제시하고 그가 느끼는 시간을 관객이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이도 저도 아닌 방관자적 위치에 놓인 관객에게 섬세한 감성적 대사를 들려준들 민망하고 유치하게 느껴질 뿐이다.

댓글 1개:

막걸리조아 :

무척 동의합니다. 오세암을 비롯한 한국 애니메이션이 가지는 한계점은 편집 부분을 포함한 센스 그 자체겠지요. 아름다운 장면도 아름답게 포장되지 않는다면 관객의 눈높이에 맞출 수 없다는 것을 제작자들이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오세암이 앙시에서 그랑프리를 타는 등의 성과를 거두고 국내에서 일부 관객들에게 호응을 거우는 등 선전한 부분도 있지만, 그런 부분을 간과하고서는 '좋은' 애니메이션에 다가가기 힘들 것 같습니다.

특히나 오세암은 인간의 이야기를 신에게 환원함으로써 전체 이야기 구도를 허물고 말았다는 결정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지요. 물론 전설을 차용해 썼다고는 하지만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선을 잘못 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