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작품인 <어느 범죄 이야기>는 평범한 소시민이 범죄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표현한 표도르 히트룩의 대표작이다. <액자 속의 사나이>와 더불어 그의 작품 속에서는 소비에트 사회의 문제점과 현실에 대한 객관적이고 날카로운 비판이 담겨져 있다. 거대한 사회속의 고독한 존재인 바실리 바실리예비치를 통해 내비치는 소통이 부재한 사회와 모순. 그 고독감은 주인공의 고통을 이중으로 가중시키며 거대한 사회속의 저항할 힘이 없는 무기력한 존재를 향한 동질감이라는 공감대를 형성시킨다.
억압받는 개인의 권리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라는 심도 있는 메시지는 러시아 애니메이션의 줄기와 인지를 크게 바꾸어 놓기도 했다. 어린이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기존의 러시아 민화나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흐름과는 달리 <어느 범죄 이야기>는 사회 속에 사는 인간의 삶에 대한 자체적인 진단과 메타포를 제시해 준다. 또한 기존 애니메이션의 재현과 묘사적 요소를 거부하고, 순수 형태의 구성을 취지로 한 구성주의적 형식과 콜라주 기법은 이러한 메시지들과 한층 더 부합하여 표도르 히트룩의 명성을 더욱 실감할 수 있게 해주었다.
악명 높았다던 소비에트의 검열 속에서 애니메이션 역사의 빛과 소금이라 할 수 있는 이러한 걸작들이 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극심한 경쟁 속에서 상업성을 그 생명력으로 하는 자본주의의 예술과는 무언가 차원이 다른 소비에트의 예술. 무한정 공급되는 ‘당근’이 있었던 것도, 자유로운 창작과 표현이 보장되는 사회도 아니었지만 그들에게는 ‘생계’ 그 위에 바로 작품이 존재했던 것이다. 어떻게 본다면 양날의 검처럼 보장과 제한이라는 두 저울이 팽팽하게 유지되었던 그 사회는 작가들에게 지옥이라면 지옥, 천국이라면 천국이 아니었을까?
유리 놀스테인(Yuri Norstein), 표도르 히트룩 같은 거장들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정치 체제와 함께 그때의 문화를 싸잡아서 평가절하하거나 부정하는 일은 어쩐지 석연치 않게 느껴진다. 이들의 걸출한 예술작품들은 프라우다나 이즈베스티야같은 매체와는 또 다른 관객의 눈이자 새로운 환상적 텍스트의 장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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