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스반크 마이어
영상과 200415400 이홍규
그의 작품은 기괴하고 독창적이며 인상적이다. 물론 이 표현엔 무조건적인 긍정의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비록 팀 버튼, 테리 길리엄, 퀘이 형제에게 큰 영향을 준 거장이라 할지라도, 그의 작품은 내게 혼란스러움과 고통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어느새 내면에서 둘로 나뉘어 그의 작품을 나름의 주관에 의해 해석하게 된다.
우선, 일반 관객의 입장에서 바라보자면, 그의 작품 ‘자바워크’에서 새끼 인형이 어미인형의 몸속에서 나오고 마치 거미인양 어미를 먹어치우는 식의 연출이나, 새싹이 돋고 나무가 자라 열매가 열렸는데 그 안에 온통 구더기가 들어있는 씬의 경우에는 혐오스러움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그의 2000년도 작품인 ‘Otesanek’에서는 그 수위가 한층 더 높아졌다. 사람모양의 나무뿌리가 아내의 사랑을 받아 실제 살아 움직이게 되어 고양이나 사람을 처참히 잡아먹는다는 등의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것들이 일반적인 정서와 통념을 넘어서기 때문에 하나의 상징성으로 다가오기보다는 그 외의 부정적인 감상들이 앞서, 본질적인 메시지와의 연결고리를 끊어 버리는 듯 했다. 물론 이것은 나의 경우에 국한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과도한 잔인함과 징그러운 표현법은 아무래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요소들은 다른 한편에선 그만의 독보적인 장점으로 부각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장점은 창작자의 입장에서 더욱 빛을 발하며 강하게 각인되었다. 일반적인 통념을 철저히 깨부순 그의 천재적인 연출과 거침없고 과감한 표현방식은 ‘자바워크’에서는 옷에 불과한 와이셔츠를 살아 춤추게 하고, 그 빈 소매에서는 병정들이 나와 행군을 하는 등 일반인의 상식을 벗어난 모순적이고 희한한 오브제들의 조합을 통해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해냈다. 그리고 그 스타일은 위에서 언급했던 수많은 창작자들에게 큰 자극이 되어주었고, 그의 이름을 세계에 알릴 수 있도록 하였다.
얀 스반크 마이어는 고유의 경험에 생명을 불어넣어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경험은 생각보다 놀라웠다. 그의 작품에선 먹는 것에 대한 행위가 자주 드러나는데 그것은 유년시절 허약한 아이였던 그에게 부모가 음식을 강제로 먹이곤 했던 것에 대한 트라우마의 무의식적인 표현이었다고 한다. 또 그 때문인지 그는 음식(食)에 대해 문명의 심벌이라고까지 표현하며 지대한 관심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창작자에게 있어 경험이 얼마나 소중하고 위대한 자산인지 그를 통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비록 그가 가지고 있는 표현방식에 있어 익숙하지 않고 생소한 부분도 있었지만, 그의 스타일에서 풍기는 독특하고도 매력적인 호기심과 상상력의 향취는 그것을 감수해내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애니메이션과 라이브 액션에 굳이 경계를 두지 않고 그것들 모두를 그저 생각에 대한 표현방식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하는 그를 통해 너무 작은 것에만 얽매여왔던 나의 좁은 식견에 대해서도 반성하고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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