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21일 금요일

얀 슈반크마이어, 표트르

(편의상 레이블은 얀 슈반크마이어쪽으로 넣겠습니다)

200713033 심영보


얀 슈반크마이어

얼마 전에 다른 과목에서 영화 장르 연구를 한 적이 있다. 그 과제 덕분에, 얀 슈반크마이어의 필름을 보자마자 나는 그의 작품 장르를 바로 간파해낼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컬트 애니메이션이로구나!’
그 때, 장르연구에서 내가 찾아낸 컬트영화의 공통점이 죄다 적용되었던 것이다. 첫째, 광인의 정신세계를 표현할 것. 둘째, (광인의 시점을 선택한 당연한 결과로) 몽환적이고 동화적인 느낌이 들 것. 셋째, 그 와중에 임팩트를 줘야 하는 부분은 수위를 넘는 잔혹성(또는 성적 표현)으로 강조할 것.
얀 슈반크마이어 필름의 광기는 피터팬 콤플렉스에 집약되어 있다. 이것 또한 컬트영화의 큰 특징 중 하나이다. 많은 컬트 필름들(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프릭스, 성스러운 피 등등)이 주인공의 정신적 정체에 초점을 맞춘다. 이성적인 내러티브를 거부하고 동물적 폭력성을 제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며, 동화적인 세계에 둘러싸여 영원한 유년기에 표류한다. 피터팬을 주인공으로 세운 컬트영화들이 섹시한 표현을 자제하고 대신 피나 살점으로 강조효과를 노리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그들의 장난감은 깨끗하거나 현대적이지 않다. 대부분 녹이 슬어 있거나, 얀 슈반크마이어의 경우는 깨끗하지만 구식 느낌의 인형들을 사용한다. 이런 낡고 망가진 소품들을 보면서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것은 동화적 취향과의 부조화이다. 정신은 유아기로 돌아가려고 애를 쓰지만, 육체는 어른의 세계에서 소모당해 낡아 떨어지고만 느낌이다. 화려한 화면 속에서 피폐하고 결핍된 정신이 엿보인달까.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나는 이런 유아기로 퇴행하는 느낌에 감정이입하고 좋아하니 참 큰일이다.


표트르

이름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효도르? 표트르? 러시아니까 표트르겠지?
처음 이 작가의 필름을 접했던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인터넷 서점에서 배송비를 맞추려고 끼워 넣은 삼천원짜리 DVD였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아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뭣보다도 이 사람 특유의 딱딱 끊어지는 동화가 인상깊었다. 공산주의 국가의 애니메이터들은 돈에 구애받지 않는 편이라 작가주의적인 작품들이 많이 나왔다고 하기에, 시간도 돈도 넘쳐나는 사람들이니 유리 노르슈테인처럼 빡빡한 질감에 빡빡한 움직임이 많겠구나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외려 플래시 애니메이션 느낌에 가까운 담백한 느낌이었달까? 쿨한 액팅과 카툰적인 이미지가 잘 어울려서 깔끔하면서도 센스있는 느낌이었다. 이 사람의 필름은 성우를 거의 쓰지 않는데, 특유의 액팅과 미쟝센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는 최적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좀 편견일지도 모르겠지만, 표트르가 만들어낸 경쾌한 리듬과 화면은 러시아보다는 파리의 이미지가 연상된다. 유리 노르슈테인의 필름이 러시아의 추위를 연상시키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라는게 또 하나의 재미있는 점이다.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