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15일 토요일

원령 공주 200710277 황내력

<원령공주>캐릭터에 대한 분석


인간 대 인간, 인간 대 자연, 자연 대 자연 이 속에서 아시타카와 산은 중재자다. 아시타카는 인간 대 인간의 대립에 대한 중재자이며, 산은 자연 대 자연의 대립에 대한 중재자이고, 이 둘은 자연대 인간의 대립에 대한 중재자다.

아시타카는 인간 사회에 살아왔으나, 조상들이 권력으로부터 배제되어 자연 속에서 자연신을 믿으며 살아온 사람이며, 산은 인간사회로부터 버림 받아 자연에 맡겨져 키워진 사람이다. 이전의 작품들에서 나타난 중재자들과는 그 존재 형태부터 많이 달라졌다는 점은 주목할 만 한다. 즉, 나우시카, 라나 등은 인간사회에서 자랐으나 자연과 완벽히 교감하는 존재였으나, 이 작품에서는 양 세계에 대해 완전히 교감하는 존재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그 결말에 단적으로 나타나는데, 아시타카는 제철소에서 산은 숲에서 산다는 설정이 그것이다. 결국 인간사회는 아시타카를 필요로 하며, 자연은 산을 필요로 한다는,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중재를 위해 이 둘은 여전히 중재자로 남아야 한다는 뜻이 아닐지... 이는 또 미야자끼의 고민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즉, 둘의 노력에 의해 사슴신은 숲속의 생명으로 환원되며 자연과 인간의 대립은 일단 끝났지만, 아직은 자연과 인간의 대립이 끝나지 않았으며, 따라서 둘은 서로의 살 곳을 서로 갈라 놓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애매함을 하나 놓아 두는데, 그 마지막 대사, 야크르를 타고 산을 만나러 숲으로 가겠다는 아시타카의 대사와 이에 대한 산의 대답이 그것이다. 결국은 공존을 택했다고 할 수 있겠으나, 산과 아시타카가 서로 다른 곳에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대립이 끝나지 않았다. 아시타카가 산을 만나러 가겠다는 것은 공존을 의미한다고 한다면 결국 하야오는 이 작품에서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 결국 문명에 대한 경향적 거부와 자연친화적 사상을 그의 애니메이션에 투영시켜 왔던 그가 인간 사회 내부의 문제를 진지하게 접하게 되었을 때, 스스로도 어찌하지 못하고 그런 애매한 공존이라는 형태릐 결론을 낼 수 밖에 없었다는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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