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28일 금요일

200713025+김효은+오세암


한국 애니메이션_오세암






나는 왜 오세암이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지 못했는가? 에 대한 측면에서 조사를 해보았다.

우선 오세암의 코드에 대한 분석을 해보자. 오세암은 길손이의 일생을 담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오세암의 주체는 엄마를 마음의 눈으로 찾고자 하는 길손이다. 그러니 그 속에 주제의식은 통괄적으로 엄마를 찾는 길손이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주인공 길손의 시점에서는 엄마를 찾는 이야기가 길손의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스님을 따라 산에 올라가는 이유 또한 엄마를 보기 위한 마음의 눈을 얻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런 길손이의 욕망을 애니메이션 속에서는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첫 번째 이유는 길손이가 엄마를 찾는 욕망에 대한 타당한 근거 제시다. 어린아이의 순수함에 엄마를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은 이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길손이가 아기였을 때 엄마는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 부분에 우리는 엄마의 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그 안타까움을 느낄 이유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장면 중에는 못된 아이 둘이 나와 길손이와 감이를 괴롭히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에 나중에 못된 형제 둘의 엄마가 나타나서 길손이를 꾸지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어쩌면 감독의 의도는 길손이가 엄마를 찾는 욕망에 대한 이유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단지 다른 아이들은 다 있는 엄마라는 존재가 나에게는 없다는 이유로 엄마를 그리워하고 엄마를 보기위한 마음의 눈을 얻기 위해 그 험난한 산을 수행한다는 것이 과연 관객들에게도 이해를 줄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이 남는다. 감독은 아이의 5세라는 이야기 묘사에 초점을 맞추었다고는 하지만 길손이의 순수함과 아이가 엄마를 찾는 동기와는 연관을 짓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욕망의 장애물도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라고 생각한다. 스토리 구성에 필요 요소는 캐릭터의 욕망과 장애물이라고 생각한다. 욕망이 있으면 당연히 그에 대한 장애물이 있다. 또한 장애물은 애니메이션의 흐름과 구성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여기서 길손이가 마음의 눈을 얻기 위한 장애물은 어떤 것인가? 필자는 산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산행 속에 길손이는 추위와 배고픔이라는 역경을 견뎌 관세보살님에게 마음의 눈을 얻어 엄마를 볼 수 있다는 내러티브 구조를 가졌는데, 이 장애물은 애니메이션의 흐름에 맥을 끊는 단점을 보이기도 한다. 장애물이란 초반부터 암시와 복선의 과정을 거쳐 클라이막스 부분에 터트려 줘야 관객들에게 호응을 얻기 마련인데 산행이란 장애는 이야기 중반부터 너무 생뚱맞게 나온다.
스님이 길손이에게 산행을 제안하는 대화 이전에 그 산행에 대한 이야기는 언급조차 없었다. 그래서 이야기 전체의 흐름을 맞춰주어야 하는 산행(장애물)은 이야기의 맥을 끊는 단점을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관세보살을 만났을 때 이야기가 갑자기 나오고 강의실에서 그 장면을 본 사람들은 이야기의 급전환에 대해 생뚱맞음을 느끼면 웃은 것일지도 모른다. 필자는 그 장면에서 그런 이유로 웃었고 이 오세암을 본 수많은 관객들 중에 다수가 그렇게 느낀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나중에 길손이가 마음을 열어 엄마한테 가는 욕망의 성취는 감흥을 일으키기 어렵다. 우리는 그 전부터 길손이의 욕망의 타당성을 늦기지 못하고 그 욕망에 동요를 일으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애니메이션에서는 오히려 감이의 시점이 캐릭터의 주체성과 욕망표출, 그리고 관객들에게 주제전달에 효과적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감이는 이미 엄마와 지내는 즐거운 나날들이 있다. 애니메이션 속에서도 그 회상 장면을 보면 감이의 엄마사랑이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감이는 엄마의 부재를 알고 있으며 자신의 유일한 가족인 길손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캐릭터이다. 그러나 캐릭터가 살아 있지 않음으로 인해 살아날 수 있는 캐릭터는 안타깝게 나타나지 못한다. 그래서 마음의 눈이라는 존재를 믿고 싶고 그것을 얻기 위해 무슨 역경이라도 헤쳐갈 수 있으면 우리에게 좀 더 주제의식과 엄마의 그리움에 대한 연민을 얻어 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장애물로서 많은 설정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길손이가 감이가 엄마를 찾기 위한 장애가 될 수 이다. 엄마를 찾는 것과 동생을 돌본다는 자신의 주체성에 대한 내면갈등이라는 장애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이야기의 구성보다는 캐릭터설정에 너무 초점을 잡은 것이 아닌가.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컨셉아트 부분에서도 아쉬움이 크다. 픽사 같은 경우는 모든 작품들이 다 한 제작사에서 만들어낸 작품이다. 하지만 그 작품마다의 컨셉은 각양각색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색과 명암과 구성에 대한 컨셉을 작품의 네러티브에 맞게 창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아쉬움은 바로 이런 점이다. 다른 회사 다른 감독의 다른 애니메이션이라고 해도 모든 작품들이 같은 그림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 오세암 또한 그렇다. 그저 바다는 파랑색 구름은 하얀색 흙은 갈색 이런 색에 대한 단순한 생각만 있을 뿐 그림의 컨셉아트 부분에서는 다른 나라 애니만큼 생각을 해주지 못하는 것 같다.
중국 애니메이션의 큰 장점은 바로 중국 애니라는 스타일이 나기 때문이다. 단순한 선의 느낌과 중국의 컨셉에 맞는 색체들.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요소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림 컨셉아트의 중요성에 대해 알았으면 좋겠다. 한국 애니메이션을 성장과 주체를 보여주는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하고 그 작품의 퀄리티를 높여주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운드 구조에서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캐릭터의 성우라든가 노래라든가 우리 나라 정서를 살리기엔 좋았다고는 하나 너무 ‘달려라 하니’가 방송 된 옛날 시대에 초점을 둬 세대의 정서를 살리지 못한 것 같다. 특히 감이의 목소리와 대사 부분이 그러하다.
노래부분이 특히나 안타까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섬 그늘에’라는 노래는 애니메이션의 한국적인 분위기를 멋들어지게 살릴 수 있는 효과적 요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노래를 부르는 것이 감이의 성우다. 차라리 성우가 부르기 보다는 가수가 불러 촌스럽지 않고 멋지게 연출 할 수 있지 않았을 까? 라는 아쉬움을 남긴다.

이 애니메이션의 중요한 흥행실패 요인은 작품이 어는 연령대에 맞춰서 내용을 만들었는지 의문이 간다는 점이다. 어른을 공략하기에는 너무 스토리가 단순하고 아이들에게 맞추었다기 보다는 너무 진지한 스토리다. 차라리 아이들을 연령대에 맞추었으면 아이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판타지라는 요소를 섞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울과 센과 치히로는 내용이 아이들이 보기엔 약간 복잡한 구성을 갔는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이유는 바로 판타지라는 요소 때문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마법들 그리고 센과 치히로에 나오는 귀엽고 캐릭터성 강한 귀신들, 이런 요소가 있었기 때문에 이 작품들은 아이들의 동심을 얻는 애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오세암에게는 아이들을 어필 할 수 있는 요소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어른들이 보기에는 내러티브 구조가 너무 단순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흥행에 실패했다고 하지만 오세암은 한국 정서를 보여주기 위한 한국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혁신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아마겟돈이라던지 블루시걸에 비해 우리 나라의 색체를 보여주려는 시도가 많았고 그 영화 속 액팅 또한 거의 세계의 프로급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한국인으로서 한국 애니메이션을 발전 하기 위해서는 장점만을 찾기 보다는 단점을 찾아 그것을 보안하는 것이 우리의 큰 과제라 생각하고 이렇게 개인적으로 오세암에 대한 흥행실패에 대한 물음과 답을 구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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