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가는 전설을 바탕으로 설립되고, 전설은 이미 세력을 잡은 권력자들의 구미에 맞게 아주 희미한 내용을 바탕으로 후손들이 만들어낸다. 미야자키의 어둠에 관한, 그리고 가장 직접적인 어조의 이 영화는 유럽의 꿈을 거슬러 올라가 일본의 희미하면서 상상으로 만들어진 과거에 이르기까지를 그 배경으로 삼는다.
그는 ‘일본의 고대 전설’, ‘민담’이라는 것을 하나의 중요한 아이디어 창고로 언급하며 그 가능성을 강조해 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수많은 작품들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이것이 <원령공주>의 초석이 되었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여기에 감독은 그가 초창기 시절부터 품어왔던 주제를 야기 시켜 하나의 구체적이고 독립적인 시나리오의 윤곽을 잡아왔다. 자연의 힘, 거대한 압제자와 맞서 싸우는 약자들의 투쟁, 유토피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 사랑의 가치가 그것이다.
그러나 <원령공주>에서 그는 전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을 추구했다. 자연과 문명의 공존, 향수, 조화의 메시지를 떠나 좀 더 현실사회의 상처와 고통을 대변할 수 있는 작품으로써 관객에게 다가서길 원했던 것이다. 우리는 분명히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스스로에게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원령공주>라는 영화에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본인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저주를 받게 된 21세기 사람들의 삶을 주인공과 동일선상에 놓음으로써, 그는 아시타카가 지닌 저주의 증거인 화상 자국을 단지 하나의 상징으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생명을 위협하고 몸으로 느끼는 고통으로 바라본다. 이 상처를 치료해가는 과정과 갈등은 현대인들에게 과거와 현실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조명과 보다 직설적인 충고를 던져준다.
하지만 여전히 그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생각들은 작품 속에 깊숙이 녹아 있다. 독선을 향한 질타, 어느 한 쪽이 주장하는 옳고 그름과 그 기준에 맞춰 다른 존재를 억압하는 행위. 이것은 <원령공주>의 가장 핵심적인 갈등과 일련의 모순 덩어리를 엮어가고 있으며, 그 주제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위험해지는 세상에서 부족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싸워야 하는 서로 다른 두 종족간의 투쟁과 긴장관계로써 나타난다.
현대의 삶은 여러 가지 문제가 끊이지 않고 나타난다. 고통, 상실, 분노, 변화, 복잡함은 오늘날의 문제만은 아니다. 미야자키는 인간과 신들의 물리적인 싸움을 통해 드러난 인간과 초자연적인 존재 사이의 관계에 대해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원령공주>를 통해 21세기가 온전히 안고 있는 하나의 이슈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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