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30일 일요일

Fedor Khitruk

교보문고가서 찾은 책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그런데, 책 제목을 안적어왔네요 -_-;;;


Fedor Khitruk was born in the Russian town of Tver in 1917 but has lived in Moscow Since 1924. In 1931 his father was sent to Berlin on government business, which meant that Khitruk went to study at a school of commercial art in Stuttgart. Returning to Moscow in 1934, he was inspired to experiment with animation after he sas Disney's Band Concert at the 1935 Moscow International Film Festival. 'I dreamed of being an Artist, actor, and Musician.', he says. Animation collects all of these professions together.
In 1937 Khitruk began his animation career at the state-run animation studio Soyuzmultfilm, which was founded in 1936 as the only production company for Soviet animation artists. However, on the outbreak of the Second Would War, Khitruk joined the Army. Because he spoke German Fluently he remained involved in post war-negotiations until 1948, when he finally returned to Soyuzmultfilm to work on feature films directed by such important figures as Ivan-Ivanow-Vano.
Khitruk became a director in his own right in 1960, directing over 15 films, including 'Story of one Crime(1962), Film Film Film(1968), The youth Friedrich Engels(1970), and Lion and the Bull(1983).' He also made three films based on A.A Milne's classic book, Winnie the Pooh. 'The Idea behind them was simple. To screen a book which I loved so much.' he says simply. 'At that time I didn't know about the Pooh-serial made by Disney, though Woolie[Wolfgang] Reitherman[of Disney] did say he liked my version.
Although Khitruk stopped making films in 1983, he remains passionate about the Communicative power of the Medium. 'The Art of Animation, which gives life to the inanimate, has the power to touch all people, both adults and children and to bring them together, transcending nationality and language.' he has said.
Khitruk is also convinced of the importance of education in Animation, and he has been hugely influential in this field since 1956. Having observed the radical changes within the Industry, he is slightly sceptical of the supposed benefits created by computer technology. 'There are still only few artists, such as John Lasseter, who master the computer as an artistic tool.' he explains, 'In most cases it is only a demonstration of the new technical posibilities of computer hardware.'
He served as the president of the Animation Commission USSR from 1962 to 1989 and was the vice-president of the leading animation body, ASIFA, from 1970 to 1980. He has also sat on he juries at many international Festivals, from Hiroshima and Los Angeles to Zagreb, while he remains the honorary president of the Russian Animation Association. Khitruk is widely considered to be one of the most influential figures in Russian Animation.


해석이 이상하게 된 부분이 많음 -_-;; 하찮은 영어실력

표도르 히트룩은 1917년 러시아의 트붸르 마을에서 태어났으나 1924년까지 모스코바에서 살았다. 1931년에 그의 아버지는 정부 정책에 따라 베를린으로 보내졌고, 그것은 히트룩이 Stuttgart 의 상업미술 학교에 공부하러 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1934년 모스코바로 돌아왔을 때, 그는 1935년에 모스코바에서 열린 인터네셔널 필름 페스티벌에서 디즈니의 ‘밴드 콘서트’ 를 보고 실험 애니메이션에 영감을 받았다. "나는 아티스트, 연기자, 음악가가 되는 것을 꿈꾸었다.‘ 라고 그는 말했다. 애니메이션은 이 직업들을 한데 모을 수 있었다.

1937년, 히트룩은 정부에서 운영하는 소유즈몰트 필름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그의 애니메이션 경력을 시작하였다. 소유즈몰트필름 스튜디오는 1936년 당시 소비에트 애니메이션 아티스트를 위한 유일한 프로덕션이었다.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히트룩은 군에 입대하였다. 그는 독일어가 유창하였기 때문에 1948년까지 전후 협상 작업에 남게 되었고, 결국 ????????????????? (해석불가, 도움 요청요...ㅜㅠ)

히트룩은 1960년에야 그의 작품을 감독하였고, 15편에 이르는 작품을 감독하였는데, 어느 범죄자 이야기, 필름 필름 필름, the youthe fridrich engels 황소와 사자 와 같은. 그는 또한 A.A.밀네의 클래식 북인 위니더 푸에 기반한 세 편의 필름을 만들었다. ‘아이디어는 간단합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을 영사하기만 하면 되었죠. 그는 간단히 말했다. 그 시절에 나는 디즈니에서 푸 시리즈를 만들지 몰랐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울리 리히터맨은 내 버젼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히트룩은 1983년 필름제작을 중단했지만, 매체의 소통의 힘에 대한 정렬을 남겼다. 움직이지 않는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애니메이션 아트는 어른과 아이 모두 아우르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국가와 언어적 장벽을 넘어 그들을 함께 데리고 온다. 그는 말했다.

히트룩은 또한 애니메이션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였고, 그는 1956년까지 이 영역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산업의 급격한 변화를 관찰해오면서, 그는 컴퓨터 기술에 의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이익에 대해서 약간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컴퓨터를 아티스틱한 툴로서 쓰는 컴퓨터 마스터인 존 라스터와 같은 아티스트가 여전이 조금은 남아있다. 그는 설명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것은 오직 컴퓨터 하드웨어의 새로운 기술적 가능성의 증거일 뿐이다.

그는 1962년부터 1989년까지 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 의 애니메이션 위원회의 장을 역임하였으며, 1970년부터 1980년까지 asifa의 부총재를 맡았다. 그는 또한 그가 러시아 애니메이션 기구의 명예총재로 있을 때까지 히로시마 패트시벌과 로스앤젤레스로부터 자그렙까지 많은 국제 페스티벌의 심사를 맡았다. 히트룩은 러시아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널리 평가받고 있다.

표도르 히트룩 자료, CARTOONS 에서 발췌(잘린 부분이 있음)

전에 Fedor Khitruk 에 관한 자료를 받았습니다. 프린트물인데, 복사 상태가 좋지 않아 끝이 잘린 페이지가 있어 영문을 해석하기 곤란한 단락이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올려주셨으면 합니다.


Eastern Europe -Fedor Khitruk
The major Russian animator of the 1960s was Fedor Khitruk(Tver, 1 May 1917). Before becoming a director himself, Khitruk spent 24 years as an animator at Sujuzmultfilm. 'The animators's work demands enormous effort,' he said. 'When I became aware that my physical strength was diminishing...I became a director.' His first film, Histoty of a Crime(1961) had a neorealist flavour. Why does the quiet, reserved clerk kill a noisy little lady? Because he is a victim of the many people who, at all times of the day or night, make noise and do not et him sleep;he is eventually pushed over the edge and kills the boisterous woman. Khitruk's graphics were innovative for the times and especially for Soviet Animation. He developed this film with sympathy for the man's misadventures, and without the manneristic optimism typical of the films produced in the Eastern block countries. Boniface's Vacation(1965), a delicate flilm for children, was a rare example of non-rhetorical work.
In 1968, he directed Film Film Film an apt satire on filmmaking, from creation to directing, which annoyed Soviet bureaucracy. Khitruk was an expert, clever craftman who liked to keep up-to-date and concerned.
'modern topics require a modern acting style,' he said about his characters, adding 'I do not believe there is an art which does not deal with social problems; and everything which deals with man is, by itself, a social problem.'

(이 다음부터 잘렸음)(잘린 부분은 괄호로 표기하고 덧붙입니다.)(교수님께서 보신다면 수정하거나 덧붙여주십시오)

Still, he is well rooted in tradition and i snot a revolutionary('My master is still the great Ghaplin,' he said. ' A director is impoverished if he does not turn children's tales from time (?) time.')

The Island(1973) and Icar and the Wisemen(1977)ha(??) a somewhat more preachy to (??) than his other films; Icaru(??) however, is and intelligent and cleverly indigna(?) film (Icarus attempts to fly despite the derision (?) the establishment and intellectuals who will (?) bury him with a eulogy). Another sincere film The Lion and the Bull, a warning against war (including nuclear war) which threatens break out between the two giant animals (?) they both bave been betrayed by a malefice creature.

the simpsons movie _감상후기


"TV에선 공짜로 보는 걸 극장 와서 돈 주고 보는 게 한심스럽다.
특히 당신!"
호머 심슨의 도발로부터 이 영화의 조롱과 풍자의 카타르시스가 시작된다.
그리운 조롱이고 비소이다.
지극히 냉소적이지만 그저 웃자고 하는 이 소리가 듣기 싫지만은 않다.
기존에 봐온 시트콤 형식의 시리즈와 비교하자면
볼거리와 내용은 TV판보다 확장되었는지는 모르나, 심슨을 처음 보는
불특정 다수 관객을 위한 배려도 내재되어 있어서 시리즈물보다 강한 맛은
덜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기발한 유머의 배치나
이슈와 트랜드를 능숙하게 캐치하는 패러디, 개성적인 캐릭터에서 느껴지는
정겨움은 그대로였지만.
개인적으로 심슨가족을 즐겨봤기 때문에 극장판 소식이 매우 반가웠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갈수록 의구심이 들게 되었다.
심슨가족의 기발한 유머는 여전하고, 이야기 구성도 유머러스하고
나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따끈따끈한 자극이 없었달까.
용기 있는 시도나 리터칭 보다는 기존의 장점을 여전히 잘 유지 하도록
하고 있고, 보다 극장에 어울리는 화면을 만들어내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기존 팬들과 더불어 심슨가족이 생소할 수 있는 사람들도 부담
없이 볼 수 있도록 기획한 것 같은데 ..
이것은 탁월한 선택일수도, 안이한 고집이었을 수도 있다.
스케일이 커지고 길이는 늘어났지만, 이야기 구조 자체는 변화되지 않았다.
심슨가족 극장판에 대해 말하는 것에 비해 그 동안의 심슨가족이
미국문화와 대중문화에서 어떤 존재였는지가 더 언급되는 것은
그만큼 그들의 역사가 생각 이상으로 길었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하자만,
아마도 심슨가족 영화에서는 센세이션한 무언가는 없다는 이유가 컸기
때문이 아닐까. 보다 다양한 것들을 더 추출 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오랜만에 그들의 유머를 볼 수 있었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할수 있다.
심슨가족 더 무비는 팬들을 위한 이벤트 영화인 동시에,
그들이 여전히 미국사회의 중요한 아이콘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데 대한
자신감을 말하고 있다. 그것이 평이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지만,
결과를 떠나, 기존의 컨셉이 가진 목적을 잘 겨냥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2008년 11월 28일 금요일

『오세암』_200613144 박 민아

오세암
잘 만든 작품이다.
감정 이입도 잘 되고, 감독의 의도대로 표현도 충분히 되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 있다.
작화 붕괴도 별로 없고 액팅도 나무랄 때 없다. 나름의 분위기도 잘 잡혀 있고.
기존의 이야기를 토대로 그 중심에 불심을 집어넣은 것이 그나마 달라졌다면 달라진 점.
한 편의 잔잔한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이다. 보면서 눈물 뺀 사람도 꾀 있을 거다.
2004 안시 페스티벌에서 대상 수상까지 한 걸작 중 걸작인데..
유독 왜 흥행에 실패 했는가에 민감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작품 하나만 놓고 본다면, 칭찬받을 점이 더 많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의 성공이 얼마나 어려운 가를 몸소 보여준 애니메이션이기도 하다. 작품성과 완성도만으로는 어려웠던 것일까.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이 나오면 그 작품의 평이 재밌다 어떻다가 아니라 망했다 안 망했다는 것으로 갈리는 것이 어느 정도 이해는 가면서도 참 착잡하다.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이 관객에게 보여 지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긴 하지만, 꼭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본다.
당시 극장 개봉 당시 열악한 스크린 수에도 불구하고 한국 애니를 살리자고 찾아가 본 분들도 꾀 되시고, 실제로도 괜찮은 작품이기도 하였으나 개봉한지 얼마 안 되어 일주일이라는 충격적인 개봉 기간을 세우고 소리 소문 없이 막을 내리고 말았다.
물론 나중에 이러한 대작을 묻힐 수 없다는 모두들의 서명 끝에 재 상영되긴 했지만.
신파라는 어르신들의 장르를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가는 흐름상 웃고 즐기려고 애니메이션을 보는 아이들에게 적합하지 않고, 그렇다고 어른들이 쉽사리 표 끊기도 그러한.
확실히 관객의 연령대가 애매모호한 점이 치명적인 약점이었긴 하다.
하지만, 진정한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고 본다.
이 작품의 경우를 보면 배급과 홍보가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는 얼마나 짜고 야박한지도 잘 알 수 있다. 그래, 제일 중요한 마케팅의 부재이다.
삼류 영화들은 개봉하기 전부터 광고다 인터뷰다 시끌벅적하게 해서 별 관심 없는 사람도 제목 내용까지 억지로 기억하게 하면서, 한 영화관 당 극장 여러 개까지 내주며 잘도 홍보해주면서 정작 이런 데서 고개를 돌리시니 참으로 할 말이 없다.
개봉을 하더라도 하루 종일 해주지도 않는다.
오전 중에 상영해 버리고는 다른 영화 거는 거 번번이 봐왔다.
‘아치와 씨팍’ 때도 그랬다. 돈 벌려고 영화관하는 거지만, 정말 뭐 같다.
영화관이라는 거 관객 한 명을 위해서도 영화를 돌려야하는 거란 말이다.
작품에서 문제를 따진다면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운이 없었다고 밖에 말하고 싶다.
하긴, 당시 같이 개봉한 영화가 ‘살인의 추억’이다 보니… 여기서 할 말 다 했다.
잘 팔리는 작품이라 하여 분석하고 도표 만들고 어느 정도 연구하면 꾀 그럴 듯한 논문은 나오겠지만, 사실상 따지자면 그런 작품이란 없다.
이렇게까지 하고, 그렇게까지 만들었는데 성공이 안 되더라.
중요한 것은 여기서 움츠러들지 않는 것이라고 본다.
관객 수가 어떻든 간에 끊임없이 만들어나가며 더 다양하고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 최종 목적이 되었으면 한다. 물론 여기저기서 지원도 끊임없이 해 주고.
가야할 길은 멀다. 흥행 성공은 그길로 가는 동안에 얻는 부수입일 뿐이다.

오세암 200713034 양은영

오세암 200713034 양은영

2002년에 개봉된 애니메이션으로 그때 당시 개봉했다가 한국애니메이션 극장 판들이 그렇듯 다른 영화 상영기간보다 짧은 기간 상영되고 막을 내렸다. 그때 한국 애니메이션에 큰 관심이 없었던 나는 조용히 막을 내린 오세 암을 뭐 그렇겠지 하고 지나쳤고 그 후 2004 안시 애니메이션 그랑프리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하지만 세계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상을 받았다고 그 작품을 다시 띄워주는 것도 없었고 (아마도 오세암 상영 후 일 년 뒤 원더풀 데이즈에서 백억 이상 작업비가 들었는데 본전도 못 찾고 완전 망해 국산 애니메이션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심이 많이 사라진 여파가 그대로 이어가지 않았나 싶다.)그대로 오세암이란 작품은 나의 기억에서 점점 잊혀져가게 되었다.

그리고 케이블에서 불교 tv채널에서 오세암을 보게 되었다. 그 때 그 것이 오세암인 줄 모르고 본 나의 생각은 ' 아 종교애니메이션이구나 잘 만들었네.' 이었다. 2002년에 만들어진 것치곤 좀 오래된 추억을 살린 듯한 토속적인 배경에 내 어렸을 때 영화 속에 보았던 허름한 옷을 입고 나오는 소년과 소녀이 주인공이며 절과 스님이 나오니 이 애들이 나중에 뭔가 깨우치는 내용이겠구나 하고 추측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연신 닭살이 올라올 것 같은 대사와 마음은 따뜻해지는 것 같은 장면이지만 전형적인 장면들이 곳곳에 나와 보는 내내 조금 진부하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또한 종교적인 색체가 전체적으로 뚜렷하게 드러나 일반 내용을 다루는 애니메이션보다 일반인이 다가가기 어려울 것 같았다. (외국에서는 한국의 특유의 느낌이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종교의 문제에 예민한 우리나라에서는 좀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힘든 소재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내가 기독교라서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역시 다루기 쉽지 않는 주제가 종교이며 우리가 가까이 가기 어려운 신의 사랑은 역시 표현하기도 어렵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족의 정을 신의 사랑으로 승화시키려는 발상은 독특하나 가슴으로 다가오는 점은 별로 없었고 (아무래도 원작 소설을 시각화 시키려니 글로는 표현 가능한 감정을 보이는 그대로 표현하기가 어렵지 않았나 싶다. ) 보살이 죽은 소년을 데려가는 마지막 장면은 불명확한 주제성과 은비 까비나 옛날 옛적에 같은 우리 전래동화특유의 몇 십 년 전의 촌스러운 연출을 보여줘 이야기 흐름의 분위기를 깨뜨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밖에도 아쉬운 점이 곳곳에 보였다. 희망을 잃지 않은 순수한 마음을 가진 남매가 주인공으로 나와 소년이 인심 좋은 아주머니에게 인절미를 받으며 좋아하며 뛰어가는 모습이나 부모가 없는 어려운 환경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위하는 모습을 보며 성인층(특히 중년층) 관객은 현재 자신과 자신의 어렸을 때를 비교하면서 때 묻지 않았던 동심을 떠올리며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상 애니메이션의 주요 타켓인 어린이들에게는 부보님의 과거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데 과거 신파의 향수가 물씬 풍기는 이 오세암을 그렇게 재미있게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국 특유의 고전 신파 애니메이션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애니메이션들이 현재 미국, 일본의 보여주기만을 위한 애니메이션이 가질 수 없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고 우리가 잊기 쉬운 따뜻한 무언가를 찾게 해주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그리고 무슨 의도로 만들었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sf판타지애니메이션에 손을 대서 망한 국산애니메이션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시대를 변해가고 있고 그 시대에 맞춰 지금의 어린이들도 충분히 동감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면 그 평가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 되었고 그 부분이 많이 안타까웠다.

아직 국산 애니메이션의 역사는 길지 않으니 이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모가난 부분을 다듬으며 점점 앞으로 나아가며 한국만의 개성을 가진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 라는 목표에 연연하여 앞만 보고 달리는 것보다 주변의 상황과 타켓의 반응을 알아보고 체계적인 계획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면 매번 실패의 고배를 마시는 한국애니메이션도 해가 뜰 날이 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작품성과 상업성 두 마리의 토끼를 한 번에 잡으면 좋겠지만 일단 국산애니메이션에게 필요한 건 관심이며 흥행에 성공을 해야 위에서 투자를 하니 현재 우리 국산 애니메이션이 인식해야할 현실인 것 같았다.

오세암_____200710277 황내력

__________________오세암_____200710277 황내력

수업전에 <오세암>을 이미 본 적이 있다. 그때는 2003년 영상전공 들어 오기 전때문에 그때의 느낌이 별로 깊지 않았다. 수업때도 다시 보게 되었으니 느낌이 좀 이상하다.
일단 기술적인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움직임도 괜찮고 배경설정도 아름답다. 그러나 나는 스토리부분에 대해서 너무 호감이 없다. 이 전에 한국 애니메이션은 스토리가 없는 것을 문제점이라고 들었다. 그러나 이<오세암>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정한 스토리가 볼 수 있다. 내가 생각에는 주로 이 스토리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기가 너무 적당하지 않다. 우선 너무 슬픈 이야기때문이었다. 나만 이런 생각이 아니라 모든 관객들이 아마 다 이런 느낌이 우선 나왔다. 중요한 것 이 애니메이션은 주로 누구 한테(어느 연령층한테) 만든 영화라고 의문이 있다. 분명히 어린 애들이 보기에 좋지 않다. 어린 애들한데 물론 더 재미있게 행복한 결국(Happy Ending)이라면 더 어울린 것 같다. 우리 픽사나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면 아무리 중간에 슬퍼도 결국은 좋은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래서 관객들이 아무리 숨 막히게 봐도 마지막에 다 풀 수 있다. 그러나 <오세암>이 그렇지 않다. 나는 일단 관객의 시각각도로 보면 슬픔이 끝까지 남고 있다. 그래서 나중에도 다시 그 애니메이션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는 애니메이션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한다. 우선 이 애니메이션의 스토리는 재미있어야 한다. 즉 사람한테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 대부분 사람은 음악을 듣거나 영화 보거나 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것이다. 영화가 너무나 극단적으로 표현한다고 대부분 사람은 다쉽게 받아들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무래도 애니메이션 속에 웃는 부분이 반드시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좀 더 좋은 애니메이션은 재미가 있는 동시에 어떤 의미를 더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일단 재미는 부분을 무릅쓰고 우선 의미를 고려하는 게 개인적으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세암>은 조금 이런 경향이기 때문에 많이 아쉽다고 생각한다.

200713046 진경미 /오세암

오세암은 상당히 잘 만든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한다.
감동과 재미가 모두 다 들어 있는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상까지 받은 애니메이션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실패를 하고 가끔 케이블에서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 되버렸다.
왜 그럴까?

일단 관객층을 잘못 잡은데 있기도 하다. 오세암이 20~30대 여성을 타깃으로 했고
아마 제작자들은 모두 성공할 것이라는 자부심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익은 6억 천이라는 처참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왜 그럴까? 일단 대사가 참 남부끄러울 정도로 민망하다.
오세암이란 책을 읽으면 고개를 끄덕이지만 입으로 읽으면 민망한 대사들이다.
그만큼 세대의 감수성이 그 시대와 지금 시대가 차이 난다는 것이다.

20~30대 여성이 아닌 40 후반 남성을 타깃으로 해야 팔리지 않을 까 싶지만.
전후세대인 40대 후반의 어른들은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좋아 보일 리가 없는
매체다. 배고픈데 만화 애니메이션이 눈에 들어 오기나 하겠는가.

적당히 감수성을 10대에 맞추던가 20대에 맞췄어야지 오세암은 너무나도
촌스러운 감수성을 보여주고 있다.

전후세대를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 반딫불의 묘와 비교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반딫불의 묘는 시대가 옛날을 보여주고 있지만 여러 세대에게 공감가는 모습으로 와닿고
있는데,

인물의 성격이나 말투, 행동이 그 나이에 딱 맞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여기서 나오는 소년은 생긴것에 비해서 너무 순진한 나머지 어떻게 보면
지능이 떨어져보이기도 하고 도저히 5살이라 볼 수 없는 성숙한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누나는 그냥 엄마가 따로 없다. 누나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 없고 어머니의
희생적인 모습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젊은 세대의 공감을 이끌기도 힘들고 추억을 회상하고자 하난 전후세대의
공감을 이끌어내기도 힘든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트웍에 좀 신경을 썼으면 얼마나 좋을까?
동양의 정서인 만큼, 보여주는 곳이 불당인 만큼, 불당의 정갈함.
시시각각 태양과 계절에 의해 변화하는 산의 모습.
불교 미술의 화려함.

이 좋은 시각적 소재들을 그냥 퀄리티 다운한 것이 매우 아쉽기 그지없다.
보살님의 복장은 화려하고 매우 섬세하며 날렵하다.

그 멋을 살리지 못한것이 보는 관객 입장에서의 아쉬움이랄까?

그리고 특수효과에 대한 상상력을 좀 키우면 좋겠다.
소년이 득도(?)했을때 모습은 중요한 부분인데 우릴 웃게 만들었다.

좀더 성스럽고 고귀한 모습도 있었을 것이다.

연출효과나 퀄리티가 2002원더키디, 달려라 하니 이후로 나아진게 세월에 비하면
나아진게 그다지 없달까.

내용 좋고 캐릭터 디자인이 좋아도 관객은 보는것이 다르다.
일단 극장용다운 퀄리티를 원한다는 것이다.

발전에 비해 우리는 눈이 굉장히 높은것이다.

페스티벌에서 외국인들이 상을 주는것과 우리나라 극장가에서
관객이 돈을 내는 입장은 매우 다르다. 그점을 알았으면 한다.

오세암이 제대로 리메이크되서 나왔으면 하는것이 내 바램이다.
한국적인 정서가 물씬 풍기는 소재이기도 하며, 타깃만 제대로 맞춘다면
성공할 작품이 아닌가 싶다.